이 소설에서 나온 트릭은 모작가의 모소설을 연상시킨다. 물론 르블랑 쪽이 앞선다. 옛날에 읽은 책이라 별로 신기한 트릭은 아니지만 당시로서는 굉장히 참신하게 받아들여졌을 것 같다.
전쟁 이전과 이후의 뤼팽이 다르다는 거야 새삼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뤼팽이 추구하는 목적 자체가 변질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예전에는 모험을 통해 보물을 얻는 게 주목적이었다면 후기의 뤼팽은 여전히 모험을 추구하되 여인의 사랑을 얻기 위한 모험이다. [여덟번의 시계 종소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연애담이었고, [초록 눈동자의 아가씨]에서는 오로지 오렐리의 사랑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보물의 존재도 뤼팽과 오렐리를 이어주기 위한 하나의 매개체 정도일 뿐 뤼팽 스스로도 거기에 욕심내지 않는다. [불가사의한 저택]에서는 사라진 다이아몬드의 행방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하지만 뤼팽은 손에 넣은 다이아몬드들을 포기하고 돌려준다. 물론 아를레트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다. 솔직히 뤼팽의 연애는 재미없다고 생각하지만 이번에는 꽤 괜찮았다. 여자의 마음을 얻었다고 자신만만해하고 있었는데 강력한 라이벌의 등장으로 뒷통수를 크게 맞아 당황해하는 게 좋았다. 쉽게 얻는 사랑은 재미없는 법이다.
이번에 뤼팽과 대결하는 적은 제법 귀엽다. 특히 여자를 사이에 두고 대립하는 적일 경우 상대의 비열함이 하늘을 찌르고 그 결말 또한 참담하기 그지 없는 경우가 많은데 앙투안 파즈로(이름이 맞으려나; 지금 책이 없어서;)는 뤼팽을 골탕먹이는 건 다른 적들과 다르지 않지만 그럼에도 아주 나쁜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고 아를레트에 대한 사랑은 뤼팽 못지 않게 진심이며 무엇보다도 꽤 귀여운 면을 갖고 있다. 그래서인지 파즈로의 결말은 다른 적들과는 사뭇 다르다. 나중에는 '원래는 좋은 녀석'이라며 뤼팽이 그를 도와주기까지 하니까. 이제까지 뤼팽이 상대해야 했던 적들과는 다른 유형인데다 뤼팽의 관대함도 엿보여서 마음에 들었다.
아, 베슈 형사도 등장한다. 열심히 바보짓하는 것외에 별다른 활약이 없지만 말이다.
# by tuppence | 2008/11/16 13:02 | N 또는 M? | 트랙백
이카, 루즈 2권
기나긴 순간
몰타의 매
별을 쫓는 자
오랜만에 서점에서 책 구입했음. [이카, 루즈]는 하이텔 시절부터 좋아했던 나호 작가님의 신작인데 얼마전에 2권이 나왔다. 구매욕을 떨어뜨리는 표지와 삽화는 여전히 마음에 안 들고 웹진 거울에 연재했던 제목인 '어떤 개인 날' 쪽이 훨씬 훨씬 좋았다고 생각하지만 원래 잘 쓰시는 작가님인지라 표지 등등은 그냥 눈 감기로 했음. 그런데 후기를 보니 3권이 나올지는 불투명한 듯 해서 약간 불안하다. 완결까지 꼭 나왔으면 좋겠는데. [기나긴 순간]은 그냥 반사적으로 구입.; 생각해보니 [이와 손톱]도 사놓고 아직도 못 읽었다.;; 얼른 읽어야지. [별을 쫓는 자]는 전부터 기대했던 젤라즈니의 책. 젤라즈니의 책은 어쩐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기분이 든다고 해야 하나...어쨌든 그냥 저절로 사게 된다. 젤라즈니 글 중에 읽고 가장 좋아했던 건 '프로스트와 베타' 였다. 저 단편 하나에 홀딱 반해서 '우와 나 이 아저씨 팬 할래!' 하고 결심했더랬지. 훗훗. (내가 이런 류의 이야기에는 좀 약하다.;) [몰타의 매]는 예정에 없던 충동구매였음.;; 원래 이걸 살 생각이 아니었는데 열린책들이 나란히 꽂혀있는 서가에 아무 생각없이 서 있다가 문득 '아, 몰타의 매를 사야해' 하고 집어들었다.-_-;;; (분명 뭔가에 홀린 걸 거야...;;;) 하드보일드와 그다지 친하지 않아서 아직까지 필립 말로우 시리즈도 읽지 않았고 루 아처는 달랑 한 권 읽은 게 전부. [붉은 수확]도 어디 구석에 넣어두고 읽지 않았는데...우웅.;;; 그래도 [몰타의 매]는 옛날에 본 거라서 샘 스페이드는 친근하게 느껴질...지도?;
# by tuppence | 2008/11/12 17:06 | 작은 책방 | 트랙백 | 덧글(2)